일상 속에서 찾은 추상미술

향기의 기억을 색으로 번역해보는 감각 추상화 실험

반짝이는 날 2025. 7. 5. 19:04

-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색으로 그리다 -

누군가의 옷깃에서 스쳐 지나간 향기,
오래된 서랍 속에서 퍼져 나오는 종이 냄새,
여름밤의 선풍기 바람에 섞인 땀 냄새와 풀 냄새.
이런 냄새는 짧고 순간적이지만,
어느새 우리 안 깊숙이 숨어 있던 감정의 문을 열곤 합니다.
향기는 기억을 불러오고, 기억은 감정을 흔들며,그 감정은 설명하기 어려운 형태로 남아 오래 지속됩니다.
정확한 향료 이름이나 과학적 분류가 아니라,단지 향기를 맡았을 때
‘나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에 집중하여그 감정을 손끝으로 표현한 과정입니다.
정확한 색의 조합을 모른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나만의 향기를 감정의 색으로 번역해보는 것입니다.

향기가 감정을 깨우는 방식 : 냄새를 느끼면 색이 떠오를 수 있을까?

후각은 감정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감각입니다.
우리가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그 냄새가 좋고 싫은지를 판단하는 건,
후각이 바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향기에는 시간과 장소, 인물, 기분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이성보다 감성을 먼저 반응시키죠.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있던 라벤더 비누의 냄새는
그때는 그냥 평범한 냄새였을 수 있지만,
어른이 된 지금 그 향을 맡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과 동시에 약간의 쓸쓸함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향기를 통해 떠오른 감정은
추상적인 상태이면서도 매우 명확한 정서의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그 덩어리는 언어보다 색으로 표현하는 게 더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라벤더 향을 맡았을 때 떠오른 감정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는 느낌', '포근하고 조용한 방의 공기'였습니다.
그래서 연한 회보라와 미색, 그리고 여백이 많은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색은 향기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분위기를 감정적으로 정확히 표현해주었습니다.

이처럼 향기에서 느껴진 감정의 잔상은
색이라는 시각 언어로 번역될 수 있으며,
그 과정은 일종의 감각 훈련이자 감정 시각화 실험이 됩니다.


향기를 색으로 바꾸는 실천적 방법 : 기억을 따라 선과 면을 펼치기

‘향기 추상화’를 실천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한 가지 향기를 천천히 느끼는 시간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향기를 대충 지나치기 쉽지만,
이 실험에서는 오롯이 향기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실천 예시 ① - 커피 향

아침 출근길,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진하고 쓴 냄새.
그 향기에서 느껴진 감정은 ‘깨어남’, ‘차분함’, ‘약간의 긴장’.
그래서 회갈색, 검은색, 짙은 청록을 활용해
반복되는 직선 패턴을 그렸습니다.
그 선은 일종의 리듬처럼 반복되었고,
마치 커피 향이 코를 타고 들어가면서 머릿속을 정리해주는 감정을 닮아 있었습니다.

실천 예시 ② - 봄 향기의 노트

봄날의 공원에서 스친 풀과 꽃향기, 그리고 햇살에 데워진 흙냄새.
그날의 향기는 ‘열려 있음’, ‘움직임’, ‘가벼운 들뜸’ 같은 기분을 불러왔고
색으로는 연두, 노랑, 분홍, 연보라가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그림에는 곡선과 점을 흩뿌리듯 배치했고,
바람처럼 흐르되 어느 지점에서는 겹쳐지고 번지도록 표현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향기를 시각화하는 작업은
기억의 해석보다 감각의 추적에 가까웠습니다.
냄새가 던지는 감정의 기류를 따라가면서 손을 움직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정서적 드로잉이 완성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감각 추상화의 힘 : 향기를 통한 감정 인식과 자기 표현

이 실험의 가장 놀라운 점은
향기를 색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단순한 창작을 넘어 감정 인식과 자기 이해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향기는 감정을 우회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감정 표현이 어려운 사람에게도
부드럽고 안전한 감정 표현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우울감이나 무기력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향기’를 떠올리게 했을 때는
의외로 감정의 문이 쉽게 열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참가자는
오래된 책에서 나는 먼지 냄새를 맡고
“어릴 때 혼자 있던 도서관이 떠올랐다”며
회색과 밤하늘색, 검정으로 이루어진
여백 많은 추상화를 그렸습니다.
그 그림은 아무 말 없이도
그의 내면이 가진 고요한 외로움을 섬세하게 표현해주었습니다.

이처럼 향기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감정을 건드리고,
그 감정을 그림이라는 언어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는 감각 기반의 심리 표현 훈련으로 확장 가능하며,
그림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치유의 형태입니다.


누구나 가능한 향기 추상화 루틴 만들기

이 실험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루틴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향수, 에센셜 오일, 카페의 냄새, 종이 냄새, 음식 냄새 등
우리가 접하는 모든 향기를 감정으로 연결하고
그 감정을 색으로 번역해보는 방식입니다.

감정 기반 향기 추상화 루틴 (10분)

1.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향기를 떠올리기

    예 : 아침 이불 냄새, 거리의 꽃 향, 택배 상자의 종이 냄새

2. 그 향기가 떠오르게 한 감정 2~3개 적기

    예 : 편안함, 그리움, 이상함

3. 그 감정에 어울리는 색 고르기 (직관적으로)

    예 : 편안함 → 베이지, 연회색

          그리움 → 보라, 딥 블루

          이상함 → 밝은 형광 노랑

4. 선/점/면의 형태 중 하나로 감정을 표현해보기

    향기의 퍼짐 정도나 강도를 표현해도 좋음

5. 짧은 제목 혹은 한 줄 기록 남기기

    예 : “풀냄새 속의 기억”, “묘하게 익숙한 박스의 향기”

 

이 루틴을 매일 혹은 일주일에 한두 번 실천해도
감정 인식 능력이 점차 강화되고,
후각을 통한 자기 감정 탐색 능력이 확장됩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완성된 그림들은
단지 창작물이 아닌, 나만의 감정 기록 아카이브가 됩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
언어로 붙잡을 수 없던 기억이
색과 형태로 종이 위에 조용히 남게 됩니다.

 

향기는 사라지지만,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은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색으로 옮겨 놓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지금 기억나는 향기 하나가 있다면,
그 향기를 색으로 표현해보세요.
그건 이미, 당신만의 감각 추상화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