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찾은 추상미술

일기 대신 그림 - 감정 중심 비언어적 표현 실험기

반짝이는 날 2025. 7. 4. 09:54
하루가 끝날 무렵, 우리는 흔히 일기를 씁니다.
기쁜 일, 속상했던 일, 생각의 흐름을 단어로 정리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죠.
하지만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슬픔과 기쁨 사이의 그 어딘가,
말은 모호하고, 마음은 분명한.
그 감정을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까요?
이 글은 ‘일기 대신 그림’이라는 비언어적 감정 기록 실험을 통해
감정을 말보다 앞서 표현해보고자 한 한 사람의 실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그림을 잘 그릴 필요 없이, 자신의 감정을 색과 선으로 번역하며
조용히 나를 알아가는 따뜻한 창작 루틴을 소개합니다.

일기 대신 그림으로 그리는 추상미술

 

단어 없이 감정을 기록할 수 있을까?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건 때로 한계가 있습니다.
“오늘 기분이 어땠지?”라고 스스로 묻는 순간,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땐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설명할 언어가 모자란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동안 심리적으로 지쳐있던 시기에,
저는 일기를 쓰는 것이 점점 고통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떤 단어도 제대로 내 감정을 대신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어를 아예 쓰지 않고,
그날의 감정을 ‘색’과 ‘형태’로만 남겨보기로 했습니다.

첫날은 무작정 선만 그렸습니다.
두 번째 날은 손이 가는 색을 거칠게 겹쳐봤고,
세 번째 날은 검은 점을 여러 개 흩뿌렸습니다.
무언가를 의도해서 그리기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림 같은 감정 기록’을 남겼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표현은 나중에 다시 보았을 때
그날의 감정을 오히려 더 명확하게 떠올리게 해줬습니다.
언어는 흐려도, 감정은 색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죠.
이 실험은 결국
말보다 더 깊은 곳에서 감정을 인식하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비언어적 감정 표현의 과정과 감각의 변화

비언어적 표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솔직합니다.
말은 때로 꾸며지고, 조심스러워지지만
색과 선은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밤 10분씩, 그날의 기분을 색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양한 감정의 미묘한 결들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불안’은 단지 검은색만으로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때론 붉은 점, 때론 반복되는 굵은 선,
또는 뒤섞인 색조의 흐름이 불안의 결을 더 정확히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기쁨’은 늘 밝은 색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기쁨 뒤엔 두려움도, 기대도 함께 있었고
그 복합적인 감정은
하늘색과 주황, 흐릿한 연보라가 겹치는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날은,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 공허한 하루를 그렸던 때였습니다.
그날은 아무 색도 쓰지 못했고,
그림 중앙에 하얀 여백만을 남겼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함’이라는 감정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 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언어적 표현 방식은
내면을 솔직하게 마주하게 도와주었고,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색과 선이라는 수단을 통해 깨닫게 했습니다.


실천 가능한 감정 그림 일기 루틴 만들기

이 실험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림을 잘 그릴 필요도,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지도 않죠.
단지 오늘 하루의 감정을 ‘그림처럼 남긴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다음은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감정 그림 일기 루틴입니다.

[ 하루 10분 감정 그림 루틴 ]

1. 하루의 기분을 한 단어로 떠올린다

    예 : 무기력, 기대, 충만, 분노, 조용함

2. 손이 가는 색을 2~3가지 선택한다

    감정과 연결하려 하지 말고, 직관적으로 선택

3. 선, 점, 면 중 하나의 형태로 시작한다

    직선, 곡선, 점 뿌리기, 넓은 색면 등 감정 따라 움직임 시도

4. 색을 겹치거나 채워 넣으며 감정의 강도 표현

    칠하는 면적이나 색 농도도 감정의 일부로 인식

5. 짧은 메모 또는 제목 남기기

    “말하고 싶지 않았던 하루”

    “어디선가 기대가 올라왔다”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색”

 

이 과정을 매일 이어가면
단지 그림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의 기록이 쌓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는 날,
언어로는 남기지 못한 수많은 감정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 중심의 비언어적 표현이 가진 힘입니다.


일기보다 나은 감정 기록의 가능성

이 실험을 꾸준히 하며 깨달은 가장 큰 변화는
‘나는 내 감정을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기분이 왜 이렇지? 하는 순간,
손이 어떤 색을 고르는지 보면 내 감정의 방향이 보였습니다.
그건 굳이 분석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비언어적 신호체계가 된 셈이죠.

또한, 감정 그림 일기는
누군가와 나누기에도 부담이 덜합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오늘 이 그림이 내 마음이야”라고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관계에서도 감정 전달이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루틴이 감정의 소모를 막아주고
하루의 끝을 자기 돌봄의 시간으로 바꿔줬다는 사실입니다.

하루가 지치게 흘러가더라도,
그림 한 장으로 정리되면
그 하루는 ‘기록된 하루’가 되고
그 하루는 곧 내 삶의 한 장면이 됩니다.

 

감정은 말보다 먼저 우리 안에서 반응하고,
그 감정은 색과 선이라는 언어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일기 대신 그림을 남기는 이 실험은,
스스로를 돌보는 가장 솔직하고 따뜻한 방법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감정은 어떤 색이었나요?
지금, 그 감정을 말 대신 그림으로 남겨보세요.